‘부고니아’, 리메이크의 이유를 증명하다…22년 만에 재탄생한 ‘지구를 지켜라’


[TV리포트=강해인 기자] 독특한 감성으로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했던 작품이 22년 만에 돌아왔다.

2003년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는 엉뚱한 매력이 있던 작품이다. 외계인에 맞서 싸우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을 고안한 청년이 등장해 웃음과 또 충격을 줬던 영화다.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독특한 발상과 키치한 매력이 돋보였던 작품으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함께했던 영화다. 이 작품이 22년 만에 돌아왔다.

‘부고니아’는 물류 센터 직원 테디(제시 플레먼스 분)가 외계인의 침공 계획을 막기 위해 그만의 계획을 실행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사장 미셸(엠마 스톤 분)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이라 믿고 사촌동생 돈(에이든 델비스 분)과 그녀를 납치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미셸은 외계인이 아니라 주장하고, 이에 테디는 강도 높은 취조를 동원하며 놀라운 상황을 맞게 된다.

‘지구를 지켜라!’의 매력은 정제되지 않은 듯한 분위기 속에 품고 있던 에너지였다. 그리고 제한된 공간 속에서 추구했던 SF 장르로서의 야심과 사회 고발적인 메시지는 이 작품을 더 특별한 반열에 올려놨다.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건 연출자였다. 원작의 톡톡 튀는 감성과 어딘가 균질하지 않은 그 느낌을 잘 담아낼 감독이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로 보였다. 그런 면에서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믿음이 가는 감독이었다.

그는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8),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2019) 등 다양한 장르를 연출하면서도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어 내며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왔다. 특히, 45일 내에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밀이 된다는 설정을 가진 ‘더 랍스터’에서 보여준 감성이라면 ‘지구를 지켜라!’와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그 기대처럼 ‘부고니아’는 병구(신하균 분)가 보여준 집념과 괴짜스러움이 잘 이식된 작품이었다.

테디와 미셸이 펼치는 진실공방은 고요한 분위기 속에 불꽃이 튄다. 외계인의 정체를 밝히겠다는 다소 어이없는 테디의 주장과 집착은 제시 플레먼스의 연기와 만나 설득력 있게 표현됐다. 반대로 미셸은 납치된 상황에서도 상항을 빠르게 파악하고, 테디를 설득하며 주도권을 가져오려고 애쓴다. 삭발 투혼까지 하며 납치당한 후 수척해져 가는 미셸의 상태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연기 가 몰입감을 한층 높였다.

‘부고니아’는 원작의 주제와 메시지를 현대적으로 변형해 리메이크의 이유를 스스로 증명한다. 영화의 미셸은 세련되고 뛰어난 리더로 보이지만, 위선적인 면을 가진 캐릭터다. 이를 통해 상류층의 가식과 결함을 비판하려 했다. 그리고 지엽적인 정보를 믿고 납치를 실행하는 테디는 가짜 뉴스를 신봉하는 이들과 오버랩되는 면이 있다. 그릇된 신념을 가지고 공격적인 언행을 하는 이들의 광기를 경고한다. 22년 전에 ‘지구를 지켜라!’가 품었던 것들이 현시대에도 공명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롭다.

다만, 원작의 키치한 매력이 줄었다는 건 아쉽다. 원작에서 비워있던 부분을 리메이크하며 채워 넣는 과정에서 영화가 무거워졌다는 인상도 받을 수 있었다. ‘지구를 지켜라!’가 날 것의 느낌이 있었다면 ‘부고니아’는 잘 정돈된 클래식 같은 영화다. 이런 부분에서 에너지가 희미해져 원작을 좋아했던 팬들이 아쉬움을 느낄 수 있다.

강해인 기자 [email protected] / 사진= CJ ENM